위험이 보이는 곳과 숨는 곳

보이는 위험만 재었던 것에 대하여


어디에 얼마를 넣을지는 늘 고민했다. 위험해 보이는 건에는 자산의 작은 부분만, 안전해 보이는 건에는 큰 부분을 넣었다.

이것이 이 글의 내용이다. 크기를 정하지 않아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크기를 정하는 기준이 반대였기 때문에 실패했다.

당시의 판단

위험과 수익은 대응한다. 높은 수익을 원하면 그만큼의 위험을 져야 하고, 위험을 낮추면 수익도 낮아진다. 이것이 금융의 기본 명제이고, 나는 이 명제 위에서 배분했다.

그러므로 위험이 큰 자산에는 자산의 작은 부분만, 위험이 작은 자산에는 큰 부분을 넣는다. 합리적으로 들린다. 지금 다시 읽어도 틀린 문장을 찾기 어렵다.

한 가지 문제만 있었다. 나는 어떤 자산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재고 있던 것은 그 위험이 얼마나 눈에 띄는가였다.

위험이 큰 자산과 위험이 커 보이는 자산은 같지 않다. 어떤 위험은 처음부터 드러나 있어서 누구나 알아본다. 어떤 위험은 숨어 있어서, 문제가 터지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앞의 것을 위험으로 세고 뒤의 것을 세지 않았다.

실제로 일어난 일

큰 손실은 크게 넣은 쪽에서 났다.

그리고 의미 있는 수익은 작게 넣은 쪽에서 났다. 처음부터 대부분 잃을 것을 각오하고 소액으로만 넣었던 비상장 지분 몇 건이었다.

배분의 방향이 결과의 방향과 반대였다.

내가 보지 못한 것

고정 현금흐름이 위험을 가린다.
이자가 나오는 자산은 안전해 보인다. 약정한 날에 입금이 되고, 그 입금이 계속되는 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입금은 원금이 안전하다는 증거가 아니다. 회수될 때까지의 잠정적 신호일 뿐이고, 신호가 멈추는 시점에는 이미 원금이 사라진 뒤다. 반대로 배당도 이자도 없는 지분은 처음부터 위험이 눈에 보인다.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으니 잊을 수가 없다. 결과적으로 나는 위험이 보이는 자산에는 작게, 위험이 숨어 있는 자산에는 크게 넣었다. 그리고 사고는 언제나 숨어 있던 쪽에서 났다.

기대수익률은 위험의 척도가 아니다. 수익률이 낮으니 위험도 낮을 것이라고 읽었다. 그러나 낮은 수익률은 그 거래에 위험이 적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위험에 비해 적게 받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두 문장은 완전히 다른데, 숫자로는 구분되지 않는다.

안전하다는 판단이 관리 부재를 낳는다. 이것이 가장 아픈 부분이다. 위험하다고 본 자산은 계속 들여다보았다. 나쁜 소식을 예상했고, 빠져나올 경로를 생각해두었다. 안전하다고 본 자산은 넣고 잊었다. 그러므로 위험 판단은 관찰이 아니라 개입이었다. 안전하다는 판단 자체가 경계를 풀게 만들었고, 풀린 경계가 실제 손실을 키웠다. 위험을 낮게 본 것이 그 자산의 위험을 실제로 높였다.

상방이 잘린 자산은 실수를 만회할 수 없다. 채권과 대여는 최선의 결과가 약정 이자다. 그 이상은 없다. 반면 손실은 원금 전부까지 열려 있다. 그러므로 이 영역에서는 틀리면 안 된다. 한 번의 실수를 다른 건의 성공으로 메울 방법이 구조적으로 없기 때문이다.

지분은 반대다. 대부분의 건이 0에 수렴하는 것이 정상이고, 한 건의 큰 성공이 나머지를 메운다. 여기서 개별 건의 실패는 실수가 아니라 설계된 결과다. 실수는 그 건에 얼마를 넣었는가에서만 발생한다.

두 자산은 성공과 실패의 정의 자체가 다른데, 나는 같은 기준으로 크기를 정했다.

가운데가 가장 위험했다.
돌아보면 손실은 양 끝에서 나지 않았다. 만기까지 보유하는 국채나 실물로 보유하는 금 같은 한쪽 끝에서 난 적이 없고, 잃을 것을 각오하고 소액으로 넣은 반대쪽 끝에서도 나지 않았다. 전부 가운데에서 났다. 안전해 보이면서 수익이 조금 더 나오는 자리. 투자적격 아래의 회사채, 신용을 확인할 수 없는 상대에 대한 대여, 담보가 붙은 고금리 거래. 이 자리는 안전의 외형과 위험의 실질을 함께 가지고 있었고, 나는 외형을 보고 크기를 정했다. 작은 건 여럿으로 나눈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한 건씩은 감당할 수 있는 크기였지만, 같은 유형의 상대에게 같은 경로로 들어간 건들이었다. 그런 건들은 함께 무너진다. 건수를 나눈 것이 분산으로 보였을 뿐, 실제로는 한 건을 크게 한 것과 같았다.

그 후 바뀐 것

자산을 종류로 나누지 않는다. 채권이냐 주식이냐 부동산이냐가 아니라, 손실이 어떤 모양으로 오는가로 나눈다. 상방이 잘려 있는가, 열려 있는가. 최악이 얼마인가. 그 칸마다 상한을 두고, 상한을 넘지 않는다.

그리고 안전해 보이는 것을 볼 때 한 번 더 묻는다. 이것이 안전한가, 안전해 보이는가. 무엇이 나를 안심시키고 있는가. 담보인가, 이자인가, 아는 사람인가.

여기까지는 원칙이다.

그러나 하나를 정직하게 남겨둔다. 나는 지금 대여와 신용 관련 영역 전체를 꺼린다. 그것이 위 구조에서 도출된 판단인지, 반복된 손실이 남긴 반응인지 아직 구분하지 못한다.

두 가지는 같은 결론에 도달하지만 성질이 다르다. 원칙은 조건이 바뀌면 다시 검토되고, 상처는 조건과 무관하게 작동한다. 그리고 상처에서 나온 회피는 언젠가 반대 방향으로 과잉된다. 신용 위험이 있는 영역을 피하는 것과 안전한 채권까지 함께 밀어내는 것은 다른 일인데, 감정은 그 둘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항목은 아직 원칙으로 확정하지 않고 여기 적어둔다. 언젠가 구분이 되면 그때 고쳐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