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퍼센트를 위해 100퍼센트를 걸다
위험보상의 비대칭에 대하여
무위험 수익률보다 몇 퍼센트 높은 수익을 조건으로, 여러 건의 대여와 투자를 했다.
그 몇 퍼센트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건마다 달랐다. 다만 공통점이 있었다. 상방은 언제나 그 몇 퍼센트였고, 하방은 언제나 원금 전부였다.
당시의 판단
당시 나는 이 거래들을 수익률로 평가했다. 무위험 자산이 이만큼일 때 이 건은 그보다 이만큼 높다. 그 차이가 클수록 좋은 거래라고 보았다.
위험을 모르지 않았다. 다만 위험을 할인 요소로 다루었다. 위험이 있으니 그만큼 더 받아야 한다는 방식으로. 이것은 금융에서 통용되는 사고이고, 틀린 사고는 아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건이 실제로 약정대로 상환되었다. 몇 건이 문제였을 뿐이다.
실제로 일어난 일
문제가 된 건들에서 잃은 것은 그 몇 퍼센트가 아니라 원금이었다.
성공한 건들의 초과수익을 모두 합쳐도, 실패한 몇 건의 원금 손실에 미치지 못했다.
내가 보지 못한 것
산수가 성립하지 않는 거래였다.
무위험 수익률보다 5퍼센트를 더 받는 거래가 있다고 하자. 스무 건을 해서 열아홉 건이 정상 상환되면 초과수익은 각 건 원금의 5퍼센트씩 열아홉 번이다. 한 건이 전액 손실이 나면 그 한 건의 원금 100퍼센트가 사라진다. 열아홉 번의 5퍼센트로 한 번의 100퍼센트를 메울 수 없다.
이 산수가 성립하려면 손실률이 극히 낮아야 한다. 즉 이 거래 방식은 판단이 거의 항상 맞아야 성립한다.
판단이 거의 항상 맞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이 사업은 개인이 아니라 조직이 한다.
나는 조직이 하는 일을 개인의 방식으로 했다.
그런데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이 거래에는 상방이 없다. 상대가 크게 성공해도 내가 받는 것은 약정 이자다. 상대가 예상보다 열 배 잘 되어도 나에게 오는 것은 같은 금액이다. 반대로 상대가 무너지면 원금 전부를 잃는다. 성장의 과실에는 참여하지 않으면서 파산의 위험만 진다.
이것이 대여라는 계약의 구조다. 은행은 이 비대칭을 감수한다. 대신 규모와 분산과 심사 능력으로 상쇄한다. 개인이 같은 계약 형태를 취하면서 그 세 가지를 갖추지 않으면, 남는 것은 비대칭뿐이다.
그리고 하나 더. 나는 이 위험의 대가로 몇 배의 수익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다. 원금 전액을 걸면서 얻으려 한 것은 몇 퍼센트였다. 위험과 보상의 크기 자체가 맞지 않았다.
그 후 바뀐 것
수익률로 거래를 보지 않는다. 그 거래에서 최선의 결과가 무엇이고 최악의 결과가 무엇인지, 두 숫자를 먼저 나란히 놓는다. 최악이 원금 전부인데 최선이 몇 퍼센트라면, 수익률이 얼마든 그 거래는 하지 않는다.
초과수익은 대여가 아니라 지분에서 구한다. 지분은 상대가 잘 되면 나도 잘 되는 구조다. 위험을 지는 대가로 성장에 참여한다. 대여는 위험만 지고 성장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안전은 수익률을 낮추는 방식이 아니라 거래상대방을 없애는 방식으로 구한다. 만기까지 보유하는 국채와 실물로 보유하는 금에는 나에게 이자를 지급할 주체가 없다. 그것은 결함처럼 보이지만, 지급할 주체가 없다는 것은 곧 파산할 주체가 없다는 뜻이다. 이자가 없다는 사실과 상대가 없다는 사실은 같은 것의 두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