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되는 유언
전달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선친께서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한 세대 전 어느 창업주가 임종을 앞두고 남긴 말이 있는데, 그것이 남에게 돈을 빌려주지 말라는 것이었다고.
나는 그 말을 들었다. 듣고, 고개를 끄덕였고, 잊었다.
그 말을 전해주신 분도 같은 일을 겪으셨다. 나는 그것을 곁에서 보며 자랐다. 사람이 변하고 관계가 끝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나와는 다른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같은 자리에 섰다.
지식은 왜 전달되지 않는가. 유언은 한 줄이다. 그러나 그 한 줄 뒤에는 한 사람의 평생이 있다. 잃은 돈, 끊어진 관계, 밤에 잠들지 못한 시간. 다음 사람에게 도착하는 것은 그중 문장 하나뿐이다. 대가는 함께 오지 않는다. 대가 없이 받은 문장은 지혜가 아니라 정보이고, 정보는 잊힌다.
나는 이 사실을 알면서 이 기록을 시작한다.
그럼에도 적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나 자신이다. 기록하지 않은 실수는 원인이 아니라 기억으로 남고,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부드러워진다. 실제로 나는 같은 실수를 여러 번 반복했다. 다른 하나는 언젠가 이 글을 읽게 될 사람이다. 그 사람이 내 후손이든, 나와 관련된 누구이든.
이 기록에는 네 가지 규칙을 둔다.
첫째, 내 판단의 실수만 쓴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쓰지 않는다. 관대해서가 아니다. 그 방에 들어간 것은 나였고, 그 결정을 한 것도 나였기 때문이다. 남의 잘못을 적는 순간 이 기록은 기록이 아니라 변론이 된다.
둘째, 금액과 이름은 쓰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회사와 시기와 액수를 들어 몇천 시간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많은 실패의 근본 원인을 짚어보면 몇 가지로 압축되고, 대부분 같은 원인이다. 남겨야 할 것은 그 몇 가지다.
셋째, 결과가 좋았던 거래도 기록한다. 결과가 나쁜 것만 모으면 그것은 실수의 기록이 아니라 손실의 기록이다. 판단이 틀렸는데 결과가 괜찮았던 거래야말로 반드시 남겨야 한다. 그런 거래는 기록되지 않으면 반복되기 때문이다.
넷째, 원칙으로 바뀌지 않은 실수는 쓰지 않는다. 아직 원칙이 되지 못했다면 그것은 소화되지 않은 것이고, 소화되지 않은 실수를 적는 일은 기록이 아니라 하소연이다.
이 기록의 첫 번째 독자는 나다. 그리고 언젠가 두 번째 독자가 있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도 이 문장들은 아마 한 줄로 도착할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