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밑의 돌부리

내가 본 것이 전부라고 믿었던 것에 대하여


앞의 글들을 다시 읽으면 원인이 서로 다르다. 담보를 잘못 읽었고, 자본구조를 보지 못했고, 크기를 반대로 정했고, 내 돈에 기준을 적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지점에서 전부 만난다. 나는 그때마다 검토를 마쳤다고 생각했다.

검토를 하지 않은 적은 거의 없다. 자료를 보았고, 사람을 만났고, 판단을 했다. 문제는 검토가 끝난 지점을 세계의 끝으로 여긴 것이다. 내가 확인한 범위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과 같았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그것을 드문 사건이라고 부른다. 나도 그렇게 불렀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 일은 드물지 않았다. 이미 거기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었고, 나만 모르고 있었다.

내가 아는 세계는 좁다. 이것은 겸손이 아니라 사실 확인이다. 겸손은 태도이고 선택할 수 있지만, 내 인식의 범위가 좁다는 것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을 인정하든 하지 않든 범위는 그대로다.

그렇다고 멈추라는 뜻은 아니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는 것 역시 하나의 결정이고, 대개 더 나쁜 결정이다. 지금 가진 정보로,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으로 판단하고, 결과를 책임지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

다만 그 판단이 옳을 것을 전제로 구조를 짜지 않는다.

이것이 앞의 글들에서 반복해 나온 결론이었다. 크기를 정하는 일, 상방과 하방을 나란히 놓는 일, 손실이 났을 때 무엇이 남는지 먼저 보는 일 — 전부 판단의 정확도를 높이는 방법이 아니다. 틀렸을 때 살아남는 방법이다.

판단을 더 잘하려는 노력과 틀릴 것을 전제한 설계는 다른 일이고, 나는 오랫동안 앞의 것만 했다.

확신은 여전히 온다. 오랜 경험 뒤에 오는 확신은 특히 선명하다. 그리고 그 선명함이 위험의 신호다. 크게 실패한 거래들은 대부분 확신이 없을 때가 아니라 확신이 있을 때 시작되었다.

고개를 들고 걸을 때 발밑의 돌부리에 걸린다.

이 기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앞으로도 실수는 있을 것이고, 그중 일부는 지금 원칙이라고 적어둔 것을 지켰는데도 일어날 것이다. 그때 이 기록에 한 줄이 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