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cycle

기술 · 통화 · 지정학


대부분의 투자자는 뉴스를 읽는다.
한 세대를 넘어 사고하는 가문은 — 뉴스 아래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지각판을 읽는다.

뉴스는 매일 바뀌고, 대개 서로를 상쇄한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수십 년 단위로 움직이는 큰 흐름, 즉 cycle이 있다.
한 cycle이 방향을 틀면 — 그 위에 놓인 거의 모든 자산의 운명이 함께 바뀐다.
가문의 자산배분은 다음 분기의 예측이 아니라, 이 큰 cycle들을 읽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은 드문 시기다.
세 개의 큰 cycle이 — 보통은 따로 움직이는데 — 동시에 변곡점에 와 있다.

첫째, 기술의 cycle이다.

인공지능은 한 산업의 유행이 아니라, 전기나 인터넷에 비견되는 범용 기술(general-purpose technology)의 전환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전환은 특정 종목의 등락이 아니라, 자본과 노동의 상대적 가치 자체를 다시 쓴다.
생산성의 지형이 바뀌고, 어떤 형태의 자본은 빠르게 복리로 불어나는 한편 어떤 형태의 자본은 조용히 잠식된다.

여기서 가문이 취할 자세는 “AI 종목을 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누가 이길지 알 수 있다는 착각 위에 선 베팅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승자의 이름이 아니라 — 전환의 모양이다.
이런 전환기에는 소수의 승자에게 가치가 극단적으로 집중되고, 나머지는 빠르게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기술 cycle에 대한 정직한 대응은, 그 집중에 올라타려 무리하기보다 — 어느 한 베팅이 틀려도 가문이 무너지지 않도록 분산을 유지하면서, 전환의 방향에 부드럽게 노출되는 것이다.

둘째, 통화의 cycle이다.

지난 반세기 세계는 달러를 중심축으로 돌았다.
그러나 그 축에 미세한 균열의 신호들이 쌓이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이 다시 금을 축적하고, 주요국의 국가부채가 역사적 수준에 이르렀으며, “무엇이 가치를 떠받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이 다시 표면으로 올라왔다.
이것은 달러 붕괴를 예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예언은 대개 틀린다.
다만 — 한 사람의 일생 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통화 질서가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인식이다.
한 세대 전의 기축 질서가 그 전 세대의 것과 달랐듯, 지금의 질서도 다음 세대에는 다를 수 있다.
이 인식의 실천이 바로 통화의 분산이고, 금과 실물자산이라는 — Gold and Silver 편에서 다룬 — 그 층이다.

셋째, 지정학의 cycle이다.

세계는 하나의 패권이 질서를 정하던 단극 시대에서, 여러 축이 경쟁하는 다극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무역과 공급망과 자본의 흐름이 다시 국경과 진영을 따라 갈라지고, 경제적 결정에 안보의 논리가 되돌아왔다.
자본이 마찰 없이 전 세계를 흐른다는 — 지난 수십 년의 전제 — 가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이 cycle의 실천은 사법권의 분산이다. 한 나라의 정치적 안정이나 자본 통제의 부재를 영원한 상수로 두지 않는 것.
Chapter V에서 말한 국가·제도의 분산이, 추상적 원칙이 아니라 지금 시대의 구체적 요청이 되는 지점이다.

세 cycle이 함께 변곡점에 있다는 사실이 이 시기를 특별하게 만든다.

기술의 기반이 흔들리고, 통화의 축이 흔들리고, 세계의 질서가 흔들린다.
보통은 이 중 하나만 움직여도 한 세대의 자산 지형이 바뀌는데, 지금은 셋이 동시에 움직인다.

이런 시기에는 과거의 전제들이 한꺼번에 느슨해진다.
단일 통화, 단일 패권, 안정된 기술 기반 — 이 세 가지를 당연하게 깔고 세워진 모든 portfolio가 시험대에 오른다.

그러나 흔들림은 위험이자 기회다.

노자는 禍兮福之所倚 — 화 속에 복이 깃든다 — 고 했다.

질서가 재편되는 시기는, 신중하게 준비된 자에게는 비대칭의 기회가 열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모두가 흔들릴 때, 흔들리지 않도록 분산해 둔 가문만이 — 그 혼란을 견디는 데서 그치지 않고 — 다음 질서의 입구에서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cycle을 읽는 것은 미래를 맞히기 위해서가 아니다.
시점은 누구도 맞히지 못한다.
우리는 다만 — 틀려도 살아남고 맞으면 나아가도록 — 가문의 자산을 미리 정렬해 둘 뿐이다.

Cycle을 읽는다는 것은 예측이 아니라 방향 감각이다.
폭풍의 도착 시각을 아는 일이 아니라, 어느 쪽이 바다이고 어느 쪽이 뭍인지를 잊지 않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