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지라는 변수
삶의 좌표가 결정하는 것
패밀리오피스가 다루는 영역은 자산 운용만이 아니다.
UBS와 Campden Wealth가 매년 정리하는 글로벌 single family office의 실제 업무 영역은 여덟 가지에 이른다.
투자 운용, 세무·법무 구조 설계, 가족 거버넌스, 위험관리, 라이프스타일 지원, 자선, 통합 리포팅, 그리고 다음 세대 교육.
이 가운데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는 가문마다 답이 다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 자산의 운용만을 다루는 조직은 패밀리오피스가 아니다.
이 글은 그 두 번째 영역, 세무·법무 구조 설계에 관한 것이다.
정확히는 그 영역의 기법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 영역이 왜 존재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하나의 변수
한 가문의 자산에 걸리는 세금을 결정하는 것은 자산의 종류도, 보유 방식도, 세율표의 숫자도 아니다.
그것은 단 하나다.
임종을 맞는 순간, 그 사람이 어느 나라의 세법상 거주자인가.
한국 거주자로 사망하면 전 세계에 흩어진 모든 자산이 과세 범위 안에 들어온다.
비거주자로 사망하면 한국은 국내에 소재한 재산에만 과세권을 갖는다.
같은 사람, 같은 자산이다.
달라진 것은 지위 하나뿐이다.
자산의 상당 부분이 국경 밖에 있는 가문에게, 이 차이는 전체 자산에 견주어 결코 작지 않은 크기를 갖는다.
중요한 것은 이 ‘거주자’가 국적으로 판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소와 거소를 어디에 두었는지, 연중 얼마나 머물렀는지, 가족과 생업과 자산 관리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종합해 실질로 판단한다.
한국 국적을 유지한 채로도 삶의 무게중심이 옮겨가면 비거주자가 될 수 있고, 외국의 영주권을 가지고도 실제 삶이 한국에 있으면 거주자로 본다.
서류가 아니라 삶의 좌표가 기준이다.
이 문장 하나가 이 영역 전체의 성격을 규정한다.
시간과 함께 커지는 비용
이 변수의 무게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시간이 흐를수록 커진다.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베이스가 자란다.
자산이 매년 성장하면 과세 대상 자체가 커진다.
같은 지위에 머물러 있어도, 그 지위가 만드는 부담의 절대액은 해마다 불어난다.
둘째, 창(window)이 닫힌다.
지위는 실질로 판정되므로 임종에 임박해 급조하면 인정되지 않는다.
삶의 무게중심을 실제로 옮기는 데에는 여러 해가 걸린다.
그런데 그 여러 해를 쓸 수 있는 시간은 나이와 함께 줄어든다.
늦어질수록 선택지의 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선택지 자체가 사라진다.
셋째, 매년의 흐름에서도 차이가 누적된다.
전 세계 소득에 과세되는 관할권의 거주자와, 영토주의 과세 관할권의 거주자 사이에는 상속의 일시금 이전에 매년의 흐름에서 이미 차이가 쌓인다.
그래서 이 영역의 질문은 “얼마인가”가 아니라 “언제인가”에 가깝다.
그리고 대부분의 가문은 이 질문을 너무 늦게 만난다.
공짜가 아닌 길
여기까지만 읽으면 답이 정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영역의 정직한 서술은 반대쪽에서 시작해야 한다.
관할권을 옮기는 선택에는 그 자체의 비용이 붙는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는 상속세 조약이 없다.
두 나라 모두에 걸치는 어중간한 위치로 임종을 맞으면 양국이 각각 과세하는 이중과세가 최악의 결과가 된다.
이 영역의 설계가 지향하는 것은 ‘둘 다’가 아니라 ‘하나’다.
영주권은 그 자체로 해당 국가의 전 세계 소득 납세 의무를 발생시킨다.
장기 보유 후 포기할 때는 보유 자산을 시가에 매각한 것으로 간주해 과세하는 출국세가 적용될 수 있다.
진입에도 비용이 있고 퇴출에도 비용이 있다.
한국 측에서도 실질 판정은 사후에 다시 검토될 수 있고, 외국환거래 신고를 비롯한 지속적인 컴플라이언스 의무가 따른다.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그 구조를 유지하는 일 자체가 하나의 부담이 된다.
이 비용들을 함께 계산하지 않은 설계는 설계가 아니라 희망에 가깝다.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것
그리고 가장 큰 변수는 세금이 아니다.
거주지를 옮긴다는 것은 가족과 언어와 일상과 인적 네트워크를 옮기는 일이다.
아침에 만나던 사람들, 익숙한 병원, 부모의 묘소, 오래된 친구들과의 거리.
어느 것도 세액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의료가 있고, 치안이 있고, 언어가 있고, 무엇보다 한 사람의 인생 대부분이 축적된 장소라는 사실이 있다.
이 축적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는 없다.
그래서 한국에 남아 정상적으로 세금을 납부하는 선택은 준비 부족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 역시 하나의 완결된 결정이며, 많은 경우 가장 존엄한 결정이다.
이 영역을 다루는 이유는 답을 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선택지에 붙어 있는 가격표를 읽기 위해서다.
가격표를 읽지 않고 내린 결정과, 읽고 나서 같은 결정을 내리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세무·법무 구조 설계는 패밀리오피스의 여덟 영역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영역은 나머지 일곱 영역과 하나의 공통점을 갖는다.
모두 시간이 남아 있을 때에만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투자는 늦게 시작해도 만회할 여지가 있다.
구조는 그렇지 않다.
거버넌스도, 다음 세대의 교육도 그렇지 않다.
이 영역들이 패밀리오피스의 업무로 분류되는 이유는 그것이 고급한 서비스이기 때문이 아니라, 시점을 놓치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한 가문이 자신의 좌표를 언제 확인하는가.
이 영역의 질문은 결국 그것 하나로 수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