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and Silver

통화 시스템과 독립적인 자산


금과 은은 가문의 portfolio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단순하며, 그래서 가장 자주 오해받는 층이다.

먼저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가문이 금을 보유하는 것은 수익을 위해서가 아니다.
금은 배당도 이자도 낳지 않고,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수익률의 잣대로만 보면 금은 형편없는 자산이다.
그러나 금을 수익의 잣대로 보는 것은 — 보험을 수익의 잣대로 보는 것과 같은 오류다.
금이 제 역할을 하는 순간은 따로 있다.

금의 본질은 이 한 문장에 있다.
금은 누구의 부채도 아니다.

다른 모든 금융자산은 누군가의 약속 위에 서 있다.
채권은 채무자의 약속이고, 예금은 은행의 약속이며, 주식은 한 기업에 대한 청구권이다.
이 약속들은 그것을 한 주체가 건재할 때만 유효하다.

그런데 금은 다르다.
금은 어떤 정부의 약속에도, 어떤 기업의 존속에도, 어떤 금융 시스템의 작동에도 기대지 않는다.
금의 가치는 시스템 바깥에 있다.

바로 이것이 — “통화 시스템과 독립적 자산”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다.
통화 시스템 전체가 흔들릴 때, 그 시스템에 속하지 않은 유일한 자산이 금이다.

이 본질에서 두 가지 실무적 원칙이 따라 나온다.

첫째, 종이 금이 아니라 실물 금이어야 한다.
ETF나 선물로 보유하는 금은 — 편리하지만 — 결국 금이 아니라 금에 대한 청구권이다.
그것을 발행한 기관과 그 기관이 속한 금융 시스템이 정상 작동할 때만 유효하다.
그런데 우리가 금에 기대는 바로 그 순간, 즉 시스템이 흔들리는 순간 — 종이 금은 자신이 벗어나려던 그 의존성을 다시 끌어안는다.
Hedge로서의 금은 반드시 실물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둘째, 분리 보관이어야 한다.
실물이라도 보관 방식이 둘로 갈린다.
공동 보관(unallocated)은 보관 기관의 금 풀(pool)에 대한 청구권일 뿐 — 다시 상대방 위험을 안는다.
분리 보관(segregated ownership)은 내 명의로 특정된 금괴 그 자체다.
가문의 마지막 보루는 분리 보관된 실물이어야 한다.

그리고 — 무엇을 보유하느냐만큼 어디에 보관하느냐가 중요하다.

실물 금을 자국 안에만 둔다면, 그것은 자산을 다양화한 것이지 위험을 다양화한 것이 아니다.
한 나라의 자본 통제, 제도 변화, 금융 위기는 그 나라 안의 모든 자산에 동시에 미치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법치가 확립된 중립적 관할권 — 가령 싱가포르 같은 — 에 실물의 일부를 분리해 두는 것은, Chapter V에서 말한 국가·제도의 분산을 가장 물리적인 형태로 실천하는 일이다.
금속 자체가 hedge이고, 그 금속을 어느 관할권에 두느냐가 또 하나의 hedge다.

금과 은은 역할이 다르다는 점도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금은 통화적 자산이다.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낮고, 각국 중앙은행이 준비자산으로 보유하며, 수천 년간 가치의 저장 수단으로 기능해 왔다.
가문 hedge의 core는 금이다.

은은 산업 수요가 큰 비중을 차지해 변동성이 훨씬 크다.
위기 국면에서 더 크게 오르기도 하지만 더 크게 빠지기도 한다.
은은 core가 아니라 satellite — 더 공격적인 위성 자산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금이 자산으로서 갖는 독특한 리듬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금은 통화 질서가 안정된 긴 시기 동안에는 조용히 잊혀진다.
그러다 — 기존 화폐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드문 국면에서 — 다시 전면에 나선다.
금본위제든, 그 이후의 질서든, 지금의 신용화폐 시대든, 통화 체제가 바뀌는 길목마다 금은 한 번씩 제 존재를 다시 증명해 왔다.
금은 오랜 침묵과 짧은 폭발의 자산이다.
그래서 평상시의 무수익을 못 견디고 팔아버린 가문은 — 정작 금이 필요한 순간에 그것을 갖고 있지 않다.

규모의 문제가 마지막으로 남는다.
Hedge layer는 평상시 수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드문 꼬리 위험(tail risk)에서 제 몫을 하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너무 적으면 위기에 의미가 없고, 너무 많으면 —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집중이 되어 — 평상시에 가문의 성장을 갉아먹는다.
금에 과도하게 기우는 것 역시 분산의 실패다.

그래서 가문이 금과 은을 다루는 자세는 보험을 다루는 자세와 같다.

우리는 그것이 빛나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보유한다.
거래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둔다.
그리고 시스템 바깥에 놓인 그 조용한 한 층이 있기에 — 가문은 시스템 안의 나머지 자산에서 더 멀리, 더 평온하게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