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VI.
Bullion Reserve
사라지지 않는 것에 대하여
“없어지지 않는 것은 토지, 미술품, 금뿐이에요.”
— 900년을 이어온 로마의 한 가문에 전해지는 조언 (제임스 리카즈, 『은행이 멈추는 날』에서)
모든 것은 태어나고, 머물고, 사라진다
사람은 백 년을 살지 못한다. 그리고 사람이 만든 것들은, 대체로 사람의 수명을 크게 넘어서지 못한다.
기업이 그렇다. 백 년 넘게 경쟁력을 유지하며 존속하는 기업은 드물다.
화폐가 그렇다. 대한민국 원화는 1962년에 태어난, 이제 육십 년 남짓 된 지역 화폐다.
기축통화조차 그렇다. 파운드는 한 세기 남짓 세계의 돈이었고, 달러가 그 자리를 이어받은 지 아직 백 년이 되지 않았다. 역사상 어떤 기축통화도 그 지위를 영원히 지키지 못했다.
옛사람들은 이를 생주이멸(生住異滅), 성주괴공(成住壞空)이라 불렀다.
태어나고, 머물고, 변하고, 사라진다.
사람이 그렇고, 사람이 만든 기업과 화폐가 그렇고, 사람의 집합인 국가와 그 패권이 그렇다.
이들이 같은 운명을 공유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모두 인간의 수명과, 인간의 능력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건너는 자산
그런데 역사에는 천 년 넘게 가치를 유지해 온 자산이 있다. 토지와 금이다.
이들은 무생물이다.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죽지 않는다. 발행자가 없으므로 발행자의 흥망에 좌우되지 않는다. 누구의 부채도 아니므로, 약속을 지키지 못할 상대방이 존재하지 않는다.
로마 퀴리날레 언덕의 콜론나 궁전은 한 가문이 구백 년 넘게, 삼십일 대에 걸쳐 소유하고 있다. 전쟁과 약탈과 흑사병과 두 번의 세계대전을 지나며. 그 가문에 전해지는 원칙은 단순했다. 재산을 삼등분하여 토지에, 미술품에, 금에 두는 것.
금은 이자를 낳지 않는다. 흔히 금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설적으로 금의 정체성이다. 금이 이자를 낳지 않는 이유는, 금이 누구의 부채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자란 결국 상대방의 약속이고, 약속은 상대방과 함께 사라진다.
우리는 금을 하나의 상품(commodity)으로 보지 않는다. 시대마다의 기축통화로 언제든 교환할 수 있는, 시대를 초월한 화폐로 본다. 오천 년 동안 금은 그 임무를 수행해 왔다. 데나리우스로, 길더로, 파운드로, 달러로 — 그 시대의 돈이 무엇이었든, 금은 언제나 그 돈으로 바꿀 수 있었다.
왜 Reserve라 부르는가
각국의 중앙은행은 외환과 함께 금을 보유한다. 그리고 그것을 준비자산(reserve)이라 부른다. 소비하기 위한 자산이 아니고, 수익을 내기 위한 자산도 아니다. 다른 모든 것이 흔들릴 때를 위해 준비해 두는 자산이다.
가문에도 같은 층위가 필요하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성장을 위한 자산이 있고, 현금흐름을 위한 자산이 있다. 그리고 그와 별개로 — 세대를 건너 보유하는, 마지막에 남는 층위의 자산이 있다. 우리는 가문의 금과 은을 그렇게 정의한다. 이 장의 이름이 Bullion Reserve인 이유다.
왜 국경 밖에 두는가
준비자산의 마지막 질문은 ‘어디에 두는가’이다.
자산배분에서 분산은 보통 자산의 종류로, 그리고 국가로 이야기된다. 그러나 실물 자산에는 한 가지 분산이 더 남아 있다. 보관 관할권의 분산이다. 지정학적 위험이 상존하는 반도에서, 가문의 준비자산 일부를 국경 밖 안정된 중립 관할권에 두는 것 — 우리는 이것을 글로벌 자산배분의 마지막 완성으로 본다.
우리 가족의 금과 은은 싱가포르의 전문 보관시설에 LBMA 규격의 바(bar)로 보관되어 있다. 실물로, 특정된 바 번호로, 가문의 이름으로. 은행 시스템의 밖에, 디지털이 아닌 형태로.
기록으로서
이 장은 권유가 아니라 기록이다.
모든 것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시간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을 가문의 가장 깊은 층위에 두는 것.
그것이 우리가 준비자산을 이해하는 방식이고, 실행하는 방식이다.